기록의 생활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티스토리 블로그를 처음 개설한 날, 남자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블로그 공개 포스팅을 10개 달성하면 축하해줄게.
처음에는 내 생각을 글로 쓴 뒤 그것을 불특정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이 좀 낯설고 두려웠다.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글을 쓰고 올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타인의 시선보다는 이 활동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퇴근 후나 주말, 혹은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며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블로그 공개글 10개’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목표를 달성한 뒤 선물로 받은 것이 바로 오늘 다룰 책인 <읽어보시집>이다.
파란색의 표지 한 귀퉁이에는 ‘읽으면 행복해지는 시’라고 소개가 되어 있었다. 뭔 의미인가 싶었는데 책을 두세 페이지 넘기니 그 말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한 문장 몇 개가 모여, 읽는 이에게 응원과 위로, 미소와 눈물을 주는 힘을 드러내고 있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쭉 읽어 내려가다보니 이렇게 빨리 읽기엔 이 시집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책을 읽을 때 제동을 걸면서 천천히 감상하려고 노력했다. 맛있는 음식을 숨겨놓고 아껴 먹듯이.
여러 편의 시들 중 유독 나를 사로잡았던 작품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내가 있잖아>
안 되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앞으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나랑 맛있는 거 먹고 다시 해보면 되지.
p.48~49
→실패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문장이다.
<같이>
지쳐서 주저앉은 네게
“힘내, 일어나.” 이런 말 말고
그냥 난 같이 앉아줄래.
p.60
→이 작품을 읽는 순간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내 뇌리를 스쳤다.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상처받고 지쳐서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밖에서 바닥에 드러눕는데, 주인공을 사랑하는 한 여자가 주인공의 옆에 똑같이 누워서 비를 함께 맞아준다. 이 장면이 드라마를 보는 순간에도 퍽 인상적이었다. 응원하고 애정하는 사람이 힘들어서 주저앉았을 때, 무작정 일으켜 세우거나 이러쿵저러쿵 말을 건네지 않고 그저 옆에서 묵묵히 함께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과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같이>라는 이 작품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여겨>
당신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런 사람들은 그냥
‘뱃살’이라고 여기면 돼요.
없으면 좋겠지만
없을 리가 없는.
p.91
→완전 대공감!!!
<정말>
나는 왜
나를 응원하는 큰 소리에는
힘을 내지 못했으면서
나를 비난하는 작은 소리에
주저앉고 아파했을까.
p.173
→불가능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실 불가능한 것들은 꽤 많다. 그중 하나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신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일개 인간에 불과한 나는 더더욱 어렵겠지 않겠는가.
대신,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그들의 응원이 내 마음속에서 증폭되도록!
정리하자면, <읽어보시집>은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특히 더 추천해주고픈 책이다.
(오늘은 교무실에 이 책을 가져갔는데, 부장 선생님께서 공부로 인해 한창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진 당신의 따님에게 꼭 필요한 책일 거 같다며 관심을 보이셨다. 부장님께 감사한 것이 참 많았던 터라, 부장님 따님께 선물로 드리기 위해 동일한 책을 한 권 더 주문했다. 와, 나도 이제 책을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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