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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세 갈래 길(래티샤 콜롱바니)

by ziyeah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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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손을 맞잡은 이미지가 있는 것은, 이 책의 핵심어가 '연대'임을 암시한다.

<세 갈래 길>을 알게 된 계기는 지난달 내가 정말 재미있게 참여했던 독서와 교사 수업 철학연수에서였다. 첫째날 연수 진행을 맡은 강사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다. 연수에서 다룬 도서 <역량의 창조>에 인도 여성 바산티의 열악한 처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과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소개받았다. 마침 연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교원학습공동체 지원금이 나왔길래 이 책을 구입하겠다고 신청하였다.

 

<세 갈래 길>이 교무실에 도착한 날, 나는 한나절 만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순식간에 몰입이 되는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 읽은 것이 아까워서 또 한 번 더 읽을 정도였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여기에 정리해두고자 한다. 오늘은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내가 생각한 답을 다는 방식으로 독후 활동을 해보겠다.

 

그 전에, 이 책의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책의 옮긴이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세 갈래 길>은 세 대륙의 세 여자, 세 개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도의 스미타, 시칠리아의 줄리아, 그리고 캐나다의 사라. 이 세 주인공을 둘러싼 사회 환경은 다르고, 그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다. 그러나 그들 개개인의 처지나 지위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삶은 저마다 문화와 전통이라는 이름의 장벽에 부딪친다. 제도와 관습은 그들의 역할을 미리 정해진 틀 안에 가두려 한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성에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편견으로 인해 자존을 위협받는다.(p.297)
...
이렇게 세 주인공은 사회가 가로막아놓은 장벽에 부딪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통된 한 가지 열망이 있다. 주어진 삶을 견디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려는 열망이다. 그들은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존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맞서 싸운다.(p.299)

 

이제 책을 읽으며 떠올린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겠다.


 

Q1. 소설 중간에 들어간 시는 무엇?

A1. 머리카락을 엮어 가발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내용을 고려했을 때 화자를 줄리아라고 가정해도 좋을 듯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줄리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상상해보면, 어쩌면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때 처음으로 떠올린 이야기 소재이자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줄리아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Q2. 머리카락의 의미?

A2. 머리카락은 ‘연대’를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 스미타, 줄리아, 사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삶을 살아간다. 이 세 사람의 삶의 궤적은 독립적이나, ‘머리카락’을 매개로 겹쳐진다. 인도의 한 사원에서 스미타는 신의 가호 아래 자신과 딸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머리카락을 자른다. 그 잘린 머리카락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의 가발 공방의 줄리아에게 전달된다. 줄리아는 그 머리카락을 아름다운 색깔의 가발로 만들어 수출한다. 그 가발을 받는 것은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다 빠진 미국의 사라이다. 사라는 이 가발을 쓰며 병마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이들은 머리카락을 자발적으로 자르거나, 가발로 만들거나, 가발로 쓰면서 힘겨웠던 과거를 극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만일 이들 중 하나라도 주변의 환경에 순응하고 굴복하였더라면 머리카락을 매개로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 명의 좌절과 포기는 다른 두 명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머리카락은 여성의 연대를 상징하는 동시에 여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응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Q3. ‘나비’의 의미?

A3. 이 소설에서 스미타, 줄리아, 사라는 모두 ‘나비’와 관련하여 특정한 기분이나 생각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스미타와 관련해서 나비는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하지만 스미타는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그의 희망, 어쩌면 정신 나간 꿈, 그의 뱃속에서 날개를 팔랑거리는 나비에 대해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p.54)

결국 나비라는 존재는 인물들이 추구하는 희망과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Q4.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주제)?

A4. 1차적으로는 차별받는 여성들의 극복의지와 용기, 2차적으로는 세상의 사회적 약자들이 편견에 맞서 싸우고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이다.

 

 

Q5. 스미타, 줄리아, 사라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이야기는?

A5.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 인상적이고 애정이 가며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슬프고 안타까워서.

스미타의 이야기와 관련해서, 맨 처음에 불가촉천민(달리트)이라는 단어만 들었을 때는 그들의 삶을 잘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맨손으로 상위 계급의 똥을 치우는 스미타의 생업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접하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21세기의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더불어 스미타가 자신의 딸만큼은 자신의 일을 대물림받지 않게 하기 위해 학교를 보내려고 시도한 장면, 나아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면서까지 고향에서 처절하게 도망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스미타가 부디 무사하게 도망쳐서 딸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리아의 이야기와 관련해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것은 가부장제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의지에 따르는 줄리아의 태도였다. 여성은 으레 처녀성을 간직하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같은 민족의 남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줄리아는 종교도 인종도 다른 남자인 카말에게 끌림을 느끼는데, 그것이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과 의지에 근거하여 그 남자와 교제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모습이 멋졌다.

 

사라의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일류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 인정과 직업적 자아 실현을 쟁취하기 위해 사라가 행했던 절실하고 처절한 공부와 노력, 투쟁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사라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한때 목표를 위해 경주마처럼 달렸던 적이 있던 사람이라 처절하게 살아온 사라의 행보가 얼추 이해되었다. 이해되었던 만큼,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사라에게 암이 찾아온 것이 야속했으며, 주변 사람들이 사라를 뒤통수치는 것에서는 더더욱 분노가 솟구쳤다. 사라가 꼭 완치 판정을 받아서 환자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적인 바깥세상에 어퍼컷을 날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라처럼 유능하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Q6. 구성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A6. 스미타, 줄리아, 사라의 이야기가 병렬적, 독립적으로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머리카락혹은 가발을 매개로 이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구성 방식 덕분에, 이 사람들이 동시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며 각자의 용기와 희망, 도전 덕분에 서로 연결되었음이 잘 드러났다. 단 하나라도 포기하거나 상황에 순응했더라면 세 인물의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건대, 모든 사회적 약자들은 홀로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으로 연대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7. 이 작품이 남녀를 이분법적으로 다루며 남녀갈등을 조장하는가?

A7. 이 작품이 남녀를 이분법적으로 다루며 남녀갈등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대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처지가 열악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노출되기는 한다. 하지만 남성만 비판하거나 여성만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줄리아의 연인 카말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한 줄리아를 밤중에 불러낸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통에만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하고, 외국에서 머리카락 자재를 들여오는 혁신적인 방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더불어 사라의 베이비시터 론은 사라가 가정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사라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반대 성별의 경우, 줄리아의 언니 프란체스카는 줄리아와 달리 매사에 비관적이고, 사라의 직장 동료 이네스는 사라의 병을 자신의 출세 수단으로 삼는 영악하고 잔인한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남성은 무조건 부정적인 존재이고 여성은 피해를 받지만 꿋꿋하게 삶을 영위하는 긍정적인 존재라고 단정짓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성별의 틀에 갇히면 안 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좋은 소설이다. 질문이 있는 독서와 글쓰기, 토론 수업의 수업자료로 활용해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아직 올해가 끝나지도 않았고 내년에 어떤 학년의 어떤 과목을 맡을지 정해지지 않았는데 벌써 수업자료를 모으는 중... 그래도 재미있다! 교사는 수업에서 자신의 존재가치와 자존감을 얻는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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