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한 달 남은 시점, 학생들의 자습 시간이 증가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기에 독서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도서관에 내려가서 책을 한 권 대출할까 하다가, 학급문고의 책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툭툭 손으로 책을 한 권씩 건드리며 고르다가 형광 초록색의 표지를 하나 발견했다. 제목은 ‘대리사회’였고, 뒤표지를 보니 ‘대학 강사에서 대리기사가 된 지방시’라는 문장이 있었다. 대학 강사였던 사람이 대리기사가 되었다는 내용에서, 작가의 치열한 고뇌와 삶의 경험이 책 안에 가득 들어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또한 ‘지방시’가 뭐지? 궁금했다.(‘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작가가 대학에서 일하던 시기에 쓴 글이라고 한다. 나중에 읽어봐야지.) 슬쩍 책을 넘겨보니, 수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수필을 좋아하는 나의 호기심을 적당히 자극하는 글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했다. 현학적인 글이 아니라 잘 읽히는, 그러면서도 전달력이 좋은 글이란 생각이 들었고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을 다 읽은 게 아까워서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자발적으로 든 책이기도 했다.(나는 웬만해서는 한 번 읽은 책을 곧바로 다시 읽지 않는 사람이다.) 작가는 대리기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사회를 ‘대리사회’라고 규정한 뒤, 삶을 주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었다.
교묘하다면 참으로 교묘한 책이다. 노동, 통제, 소외, 빈곤, 시스템에 관한 쉽지 않은 사유를 그런 재미 사이에 절묘하게 끼워 넣는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반론을 내기라도 하면 곧 눈총이 쏟아진다. 소통은 주체가 된 이들의 논리를 확인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 우리는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노동하는 주체라는 키워드뿐 아니라, ‘호칭’이라든가 ‘가족애’와 같은 내용들도 꽤 관심이 갔다.
생각나는 대로 좀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호칭에 대한 문제의식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리기사’가 겪는 호칭의 경험들을 이 책을 통해 접해볼 수 있어서 유의미했다.
“차가 많이 낡았죠”하고 웃던 그는, 차의 ‘가격’과는 별개로 내가 만난 가장 ‘품격’ 있는 손님이었다.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주체로 만들었다. 그러한 힘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공감하고 또한 경청하는 데서 나온다.
공감과 경청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얼마다 드물며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새벽 1시가 지나고 나면 막막했다. 우선 콜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심야버스를 제외한 모든 막차가 끊겼다.
... 외로움은 물론이고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집에 있을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 정말로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핸드폰 배터리가 충분하면 그런 대로 마음이 든든했다.
아직 결혼과 출산 및 양육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심신이 고된 상황에서도 아이만 생각하면 힘이 난다니. 언젠가 내가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게 된 뒤에 이 대목을 다시 읽으면 좀 다를까?
노동의 배신과 나의 르포르타주, 지식과 노동을 계속 양손에 들고 교차 방문하는 삶
지식과 노동을 양손에 들고 교차 방문하는 삶. 교사도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교사로서 노동하는 내 삶의 이야기를 ‘대리사회’의 작가처럼 글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글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책을 가지고 독서토론이나 글쓰기 수업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읽기에 적당한 양과 난이도가 장점이며, 아이들이 글 내용을 토대로 우리 사회와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소재가 되리라 본다.
상호텍스트적 수업의 아이디어도 두둥실 떠오른다. 예컨대, 이 글에서는 대리기사와 택시기사의 공생 관계가 소개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일전에 읽었던 ‘길 위에서 쓰는 편지(명업식)’가 떠올랐다. 둘 다 자동차로 이동하며 사람들을 목적지로 데려다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 훨씬 더 크다. ‘길 위에서 쓰는 편지’는 택시기사가 ‘자신’의 택시에서 손님으로 탑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책을 제시하며 주체적으로 행동한 결과물을 주로 다룬다. 택시기사와 손님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주체로 관계를 맺고 스스로 혹은 서로를 위로하는 따스한 내용이 대다수이다. 반면에 ‘대리사회’는 대리기사가 ‘손님’의 차 운전석에 어색하게 들어가, ‘손님’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행동과 말, 생각에 제한을 받는 경험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길 위에서 쓰는 편지’에 비해 세상을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더 크다. 두 글을 연관시켜서 수업을 해봐도 참 좋을 거 같다. 두 글의 특징을 비교하고, 나아가 사회 속 인간의 주체성과 관계맺음 등에 대해 생각하는 글쓰기를 시켜보면 어떨까.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한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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